어떤 영화의 대사 중 이런 대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Maturity is really just another word for how much misery you'd swallow." 번역하자면, '성숙함이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참함을 삼켰는가에 관련한 또 다른 단어이다'란 말입니다. 어린 아이들과 달리 성인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왔고, 앞으로도 그런 과정을 거칠 성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 자신의 성인됨을 표현하며 아이들을 향해 '저들은 아직 어린애들이잖아'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삶 가운데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정말 가능하다면, 어려움이 없는 삶만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더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런 안락한 삶 속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저 아이와 어른의 관계일 뿐, 거기엔 성인들간의 성숙한 관계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실 성인간의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잖아요.’ 그러나 자녀라고 어디 조그만 유치원생만 일까요? 다 큰 성인 자녀도 자녀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2-14)
배신과 상처, 아픔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 배신당할 수 있음에도, 상처받을 수 있음에도, 아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라 하신, 견디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히 붙들고 살 때, 비로소 성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장 성숙하셨던 예수님처럼 비로소 고난의 십자가와 기쁨의 부활을 경험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우리가 지금보다 좀 더 커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지금보다 좀 더 큰 신뢰 가운데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관계, 장성한 자들 간의 대화가 되는 관계를 원하십니다. 이 성숙한 대화의 관계는, 그러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내 입술의 노래가 되신다는 찬양과 감사 속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이 곧 성숙함입니다.
조형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