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쯤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 템피 기차역에서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노숙생활을 하던 데이브 텔리는 몇 달 전 3300달러가 든 돈가방을 발견합니다. 그는 고민 끝에 가방에 기재되어있던 주소로 직접 찾아가 그 돈 가방을 돌려줍니다. 그의 선행은 지역신문을 통해 알려져, 그는 수많은 취업제의를 받게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취업제의들을 사양하고, 노숙생활동안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노숙인센터가 운영하는 도시 농원에 취직합니다. 이제 취직을 하였으니 정식으로 운전면허증을 재발급받을 수 있었고, 몇 개월이 지난 후, 그는 농원의 풀타임 관리인으로 승진합니다. 그리고는 노숙생활 6년이 지난 후, 부모를 찾게 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조그만 행동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에게 기회를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소식을 접한 상당 수의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돼. 그래야 좋은 일이 생기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위의 이야기가 단순히 ‘선행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기는 구나’라는 것이 전부일까? 만일 그 노숙인이 돈을 찾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관심이 없었다면 과연 그의 삶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그는 주변의 관심으로 말미암아 한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가치를 다시금 되찾게 되었고, 그것은 그를 다시 ‘사람’으로 ‘삶’을 누리게끔 만든 것이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이야기에 나오는 죄수 장발장을 인간으로 대하고 그에게 은접시와 더불어 은촛대까지 내어준 미리엘 주교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 말씀하신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웃을 나처럼 ‘인간’으로 대하라는 것, 그것 뿐입니다.
- 조형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