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맬러머드의 소설 <수선공>의 주인공 야코프 복은 벌기도 힘든 돈을 낭비하여 산 스피노자의 책을 읽고 마치 마녀의 빗자루를 탄 듯, 자신은 이전의 자기가 아니게 되고 또 자유롭게 됐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어떤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있는 신세지만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 거죠.
예전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아브라함과 사도 바울을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예로써 생각해 보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의 터전을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신약에서 소개된 바울의 회심을 다시 태어나는 혹은 거듭남의 본보기라고 생각해 보면서도 오늘을 사는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한다며 뒤로 물러섭니다.
위로부터 태어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변화되는 것으로 이해해 봅니다. 야코프 복이 마치 회오리바람이 등에 이는 것처럼 계속해서 스피노자를 읽게되었듯 우리는 그 말씀에 사로잡혀 마침내 진리에 의해 자유롭게 되는 거죠. 그렇지만 이 자유가 방종은 아닙니다. <바로 보다> 입니다.
교회에 나가며 평범한 이웃이었던 어머니 아버지들이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를 잃는 큰 아픔을 겪고 나서야 이제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며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지만 거듭나지 못하더라도 이런 슬픔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교의 화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처럼 이제까지 산은 물로 물은 산으로 보였던 것들이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똑바로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가리워지고 흐릿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지요. 그러다 참세상을 바라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거죠.
예수님께서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으니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을 바로 들으며 우리는 우리 손으로 하나님 나라 문을 열어야겠지요.
과거에도 내 눈은 그곳에 있었고
과거에도 너의 눈은 내 눈 속에 있어서
우리의 여관인 자연은 우리들의 눈으로
땅 밑에 물 밑에 어두운 등불을 켜두었다
컴컴한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나올 때
너의 눈빛 그 속에 나는 있다
미약한 약속의 생이었다
실핏줄처럼 가는 약속의 등불이었다
- <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마지막 연, 허수경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는 실핏줄처럼 가늘어진 것 같은 시대에 컴컴한 곳에서 스며 나오는 작은 불빛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생은 이어질 것이며 하늘 문은활짝 열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