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가 숨겨둔 먹이를 찾을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어리석은 것, 차라리 숨기지 말고 다 먹지”라며 혀를 끌끌 찼죠. 하지만 그렇게 찾지 못한 도토리, 잣등의 열매가 이듬해 나무로 자란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숲을 번성케하고 모든 생명에게 공평히 일용할 양식을 베풀어 주시죠. 청설모가 알고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 주신 ‘생기’가 그대로 사랑으로 흘러나온거죠.
사람은 고기를 혼자만 간직하여 두다 마침내 썩게 만들어 그 악취로 자기자신은 물론 세상을 오염시키네요.
어리석은 것은 청설모가 아니라 하나님이 불어 넣어 주신 ‘생기’를 악취로 내뿜는 ‘나’였습니다.
처음 며칠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어이없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는데 점심을 먹고 차에서 잠시 쉬고 있던 어느 날, 신문기사를 읽다가 눈물이 주루룩 흐르네요. “일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왜 이러지 왜 이러지”하며 얼마간 있다가,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친구에게 송금을 했습니다. 이태원 추모 공간에 꽃을 놓아 달라고 부탁했죠.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만난 적은 없지만)생전의 그들만큼 예쁜 꽃이더군요.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이태원에 가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슬픔에 생업 걱정에 눈물로 지새우고 있을 그곳 상인들에겐 잘못이 없으니까요. 행여나 무슨 말이라도 하면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몰라 숨죽이고 있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으니까요.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 입에서는 후안무치한 말만 쏟아지고 있는데 말이죠.
매뉴얼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참사(특히 세월호)를 겪고도 재난방지 대응책이 없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죠.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에는 다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픔이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염원이 담겨 있겠죠. 그 고통을 알기에 다른 민족(이웃)에게도 그 아픔을 당하게 하지 말라는 당부도 담겨 있겠죠. 쉬지도 못하고 노역을 했으니 안식일을 지키라는, 네가 쉬어야 집에서 부리는 사람은 물론 심지어 가축도 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그런 애틋한 마음도 담겨 있겠죠.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신앙적 히브리인인 우리들에게 주시는 간곡한 호소문인거죠.
재난방지 매뉴얼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을 겁니다. 매뉴얼 작성 담당자들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눈물까지 담아 40일 이상을 고민하며 최선의 방지책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매뉴얼을 손에 든 그들의 얼굴에는 모세처럼 빛이 어렸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억울하게 죽는 사람은 없겠다, 이것으로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기쁨과 희망의 빛이 차올랐을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지 못한 ‘우리’는 오늘 또 눈물을 흘립니다.
청설모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