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가수 임재범이 록밴드 시나위의 보컬로 있을 때 부른 ‘시나위 1집’에 있는 노래인데 물론 가사에서처럼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차 시동을 켜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그리고 게으름 탓에 주파수는 늘 한 곳에 고정되어 있는 터라 그저 아무 생각없이 ‘소리’만 귀로 흘려 보내고 있던 것이다.
거의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채널에 똑같은 소리들만(일기예보나 교통정보같은) 있다가도 간혹 난민과의 인터뷰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저 살던 곳에서 쫓겨 나와 그들의 참혹한 상황을 전하는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전하는 듯 느껴진다. 이미 오랜 전쟁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탓일까. 아니면 가족과 집을 잃고 떠도는 그들의 아픈 삶을 그저 남의 얘기로만 듣는 나의 공감 능력의 부재 때문일까.
한 작가에 대해 신속,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일단 세 권의 책을 읽으면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 권의 책은 그 작가의 데뷔작, 대표작, 그리고 히트작을 말하는데 데뷔작에는 한 작가의 문학적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에, 대표작에서는 그 작가의 역량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히트작에서는 그가 독자들과 형성한 공감대의 종류를 알려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방법에 따라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세 권을 고른다면 데뷔작은 모세오경, 대표작은 복음서, 그리고 히트작은 시편 등이 되지 않을까 내 맘대로 생각해 보았다. 한 작가의 문학적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있는게 데뷔작이라면 모세오경에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본질적 유전자가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회당에서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로 시작하는 이사야서를 읽으셨는데(누4:17-19) 주님의 영이 내린 까닭은 온갖 매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방을 가져오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것은 레위기 25장에 기록되어 있는 희년의‘나팔소리’일 수도 있는데 ‘희년’ 규정은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되지만 오랫동안 ‘희년사상’을 연구해 온 전문가에 따르면 ‘희년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키 위한 프로젝트’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독일성서공회는 ‘희년’을 포함한 레위기 25장의 모든 규정이 겨냥하는 바는 ‘누구나 자기 땅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주석을 달아놓았다.
성령강림 마지막 주일, 하나님 ‘정의와 공의’의 ‘나팔소리’가 울리길 기도하며 내일부터는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높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