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나 그 어떤 일들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기사를 보며 내가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이별을 하는 게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떠나게 됨을 알고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잠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여전히 뒤에 남아 아직 그림자도 지우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행복한 일이기만 할까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오히려 나도 모르게 떠나간 사람들의 몫이겠죠.
많이 아파하세요, 많이 무서워하세요,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죠. 그러나 무너지지는 마세요.
우리 모두가 기도로써 기둥을 세워 떠받치고 있을테니 스스로 무너지지는 마세요.
아픔을 나누고 무서움을 나누면 그 무게는 조금 더 가벼워지겠죠.
그뿐인가요,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나누어 먹고 웃을 일 울 일, 화나는 일도 나누어야지요.
좋아하여 자주 손에 올려놓고 읽는 윤동주 시인의 <화원에 꽃이 핀다> 라는 산문이 있습니다.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개나리, 진달래, 앉은뱅이, 라일락, 민들레, 찔레, 복사, 들장미, 해당화, 모란, 릴리, 창포, 튤립, 카네이션, 봉선화, 백일홍, 채송화, 달리아, 해바라기, 코스모스,----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촉촉하고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힘을 느꼈습니다. 여리디 여려 보이는 시인의 가슴 어느 한 구석에 이렇게 강한 힘이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희망도 갖고자 합니다. 막연하고 헛된 희망일지라도 그 두 글자에 내재되어 있는 힘도 결코 작지 않을테니까요. 아니요 그 어떤 힘보다 클지도 모르죠.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단풍의 세계가 있고, -이상이견빙지- 서리를 밟거든 얼음이 굳어질 것을 각오하라-가 아니라 우리는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우주의 마지막도 아니고 저 멀리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도 1년이 아니라 10년, 20년 그 이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예가체프 사 놓았습니다.
커피물이 팔팔 끓기를 기다립니다.